2020 04 07
마가복음 14 : 43 ~ 52
폭력을 대하는 태도
가룟 유다의 입맞춤
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저항하지 않으신 예수님
46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48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도망가는 제자들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 가룟 유다가 군병들을 이끌고 예수님을 잡으러 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저항하지 않으시지만, 그들의 폭력이 얼마나 불의한지를 드러내십니다.
? 검과 몽치에 굴복하신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이루시려 잡히셨습니다.
경비병들 그들은 주인의 아들을 죽이려는 악한 소작농들 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정당하면, 왜 낮에 사람들이 많은 성전에서 잡지 않았느냐?' 반문하십니다. 예수님은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으셨지만, 폭력에 굴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대신 자신이 죽음으로 불법적인 폭력의 실체를 드러내십니다.
유다는 십자가 대신 검과 몽치를 택했습니다.
주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으나, 주님을 팔아 넘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따랐지만, 주님 가시는 십자가의 길을 바라지 않고 주님의 길을 배신함으로 제 목적을 이룹니다. 나도 욕망을 위해 주님을 따르고 있지는 않은지요?
곁에 섰던 한 제자가 검을 빼들었습니다.
유다가 검과 몽치를 든 자들의 편이었다면, 이 제자 또한 주님의 뜻을 거스린 것입니다. 고난의 길을 예고 하실 때, 주님을 만류했던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준엄한 책망을 들었으나, 다시 검을 들어 주님의 길을 막아섭니다. 주님을 위한 우리의 열정이 주님의 뜻을 거스릴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합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맞서기를 거부하신 주님을 보면서 제자들은 전의를 상실했습니다. 유다 처럼 폭력의 편에 설 수도 있고, 폭력으로 맞서고, 굴복하고 도망하는 여러 대치법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폭력에 굴복하시지 않으심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시는 주님의 방식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강자의 폭력에 주의 제자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 주님 !
수 세기 동안 줄곧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셨건만, 자신들이 생각하는 모습과 형상이 아니라는 이유와 그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죽이기로 작정하고 때를 엿봅니다. 원수는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고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 그는 돈 궤를 맏았던 자입니다. 그동안의 이적과 기적을 바탕으로 유대의 왕으로 오셨다는 기대와 반하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고난 받고 죽으실 것을 듣고 실망하고 맙니다. 기댈 언덕이 아니면 기댈 언덕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시대의 권력자들인 종교 지도자들에게 값을 받고 팔아 자신의 탐욕을 채웁니다. 그들이 주님을 잡으려고 검과 몽치로 무장하고 나왔을 때, 털깎는 양처럼 순전히 잡혀 가십니다. 아무 저항도 않으시고 그들의 만행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복 하시려 잡히셨습니다.
주님 !
폭력을 폭력으로 맞서지 않게 하시고, 불의 가운데서도 주님의 뜻을 구할수 있는 신실한 믿음을 더하여 주시고,
주님 홀로 존귀와 영광 받으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묵인하지 않고, 주님의 방식을 따라 맞서게 하소서
* 유럽 동부와 남부 지역은 서부와 북부에 비해 자국에 있는 무슬림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이 지역 교회가 자국에 있는 무슬림을 향한 선교사역을 활발히 펼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구드립니다.
찬송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https://youtu.be/_vxxM4OQ0Gk
마가복음 14 : 43 ~ 52
폭력을 대하는 태도
가룟 유다의 입맞춤
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저항하지 않으신 예수님
46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48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도망가는 제자들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 가룟 유다가 군병들을 이끌고 예수님을 잡으러 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저항하지 않으시지만, 그들의 폭력이 얼마나 불의한지를 드러내십니다.
? 검과 몽치에 굴복하신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이루시려 잡히셨습니다.
경비병들 그들은 주인의 아들을 죽이려는 악한 소작농들 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정당하면, 왜 낮에 사람들이 많은 성전에서 잡지 않았느냐?' 반문하십니다. 예수님은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으셨지만, 폭력에 굴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대신 자신이 죽음으로 불법적인 폭력의 실체를 드러내십니다.
유다는 십자가 대신 검과 몽치를 택했습니다.
주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으나, 주님을 팔아 넘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따랐지만, 주님 가시는 십자가의 길을 바라지 않고 주님의 길을 배신함으로 제 목적을 이룹니다. 나도 욕망을 위해 주님을 따르고 있지는 않은지요?
곁에 섰던 한 제자가 검을 빼들었습니다.
유다가 검과 몽치를 든 자들의 편이었다면, 이 제자 또한 주님의 뜻을 거스린 것입니다. 고난의 길을 예고 하실 때, 주님을 만류했던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준엄한 책망을 들었으나, 다시 검을 들어 주님의 길을 막아섭니다. 주님을 위한 우리의 열정이 주님의 뜻을 거스릴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합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맞서기를 거부하신 주님을 보면서 제자들은 전의를 상실했습니다. 유다 처럼 폭력의 편에 설 수도 있고, 폭력으로 맞서고, 굴복하고 도망하는 여러 대치법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폭력에 굴복하시지 않으심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시는 주님의 방식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강자의 폭력에 주의 제자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 주님 !
수 세기 동안 줄곧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셨건만, 자신들이 생각하는 모습과 형상이 아니라는 이유와 그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죽이기로 작정하고 때를 엿봅니다. 원수는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고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 그는 돈 궤를 맏았던 자입니다. 그동안의 이적과 기적을 바탕으로 유대의 왕으로 오셨다는 기대와 반하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고난 받고 죽으실 것을 듣고 실망하고 맙니다. 기댈 언덕이 아니면 기댈 언덕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시대의 권력자들인 종교 지도자들에게 값을 받고 팔아 자신의 탐욕을 채웁니다. 그들이 주님을 잡으려고 검과 몽치로 무장하고 나왔을 때, 털깎는 양처럼 순전히 잡혀 가십니다. 아무 저항도 않으시고 그들의 만행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복 하시려 잡히셨습니다.
주님 !
폭력을 폭력으로 맞서지 않게 하시고, 불의 가운데서도 주님의 뜻을 구할수 있는 신실한 믿음을 더하여 주시고,
주님 홀로 존귀와 영광 받으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묵인하지 않고, 주님의 방식을 따라 맞서게 하소서
* 유럽 동부와 남부 지역은 서부와 북부에 비해 자국에 있는 무슬림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이 지역 교회가 자국에 있는 무슬림을 향한 선교사역을 활발히 펼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구드립니다.
찬송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https://youtu.be/_vxxM4OQ0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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