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 : 12~27 두 종류의 심문 20220412
안나스에게로 끌려가신 예수님
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라
베드로의 첫 번째 부인(否認)
15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대제사장의 심문에 당당히 맞서시는 예수님
19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대하여 물으니
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르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베드로의 두 번째, 세 번째 부인(否認)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대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 예수님은 대제사장에게,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심문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시종일관 당당하게 임하시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 14절)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살리는 대속물로 내놓으셨습니다(막 10:45).
대제사장 가야바는 이전에 열린 산헤드린 공회에서 민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예수님을 죽이자고 주장했습니다(11:50). 그러나 하나님은 악의에 찬 그의 말을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시는 예수님'을 증언하는 말이 되게 하셨습니다(11:51,52). 예수님의 죽음은 허망한 비극이 아니였습니다. 수많은 생명을 잉태하는 창조적 죽음이었습니다.
19-24절) 대제사장은 마치 예수님이 비밀리에 불온한 사상을 전하기라도 한 것처럼 질문을 던졌지만, 예수님은 아무 것도 감추지 않고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가르치셨기 때문에 당당하셨습니다.
도리어 증인과 증언도 없이 자신을 죄인 취급하는 법정의 오류를 지적하셨습니다. 또 제사장의 아랫사람(경비병)이 예수님께 폭력을 휘둘렀지만 거기에 주눅 들지 않으시고 부당한 폭력에 항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투명했기에 권력보다 당당하셨고, 삶이 정의로웠기에 폭력보다 단단하셨습니다. 정말 사모하고 본받을 만한 분이 아닙니까?
15,18,25-27절) 십자가를 놓치면 예수님도 놓칩니다. 칼을 휘두르면서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막으려 했던 베드로는 기어이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그에게 예수님은 모르는 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난의 십자가를 피하면 길을 잃습니다. 예수님의 길이라고 믿고 가는 그곳에 십자가가 있습니까?
22절) 사유하지 않는 사람의 충성심은 의인을 박해하는 불의한 폭력을 낳을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경비병은 심문 과정을 보면서도 대제사장의 심문이 정당한지, 심문받는 예수님이 정말 죄인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기가 모시는 사람에게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그의 맹목적인 충성과 성실이 결국 죄 없는 예수님을 때리는 데까지 이어졌습니다. 사유 없는 충성, 성찰 없는 신념만큼 무섭고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 아무런 흠도 죄도 없으신 예수님, 시기와 질투로 끌려가신 예수님.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으로는 아무런 흠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그저 세상을 유혹하고 현혹하며,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했다는 죄로 인해 대제사장에게 끌려가 고난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을 드러내시려 세상에 오셨으나, 세상은 거슬러 죽어 마땅한 행악자로 전락시킵니다.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하신 말씀처럼, 세상 모든 죄악을 대속 한다는 대제사장 마저 죄인의 길을 향해, 예수님을 제거하려 합니다. 세상에 어떤 '선과 믿음'을 기대할 수 있곘습니까? 그럼에도 능력이 없으셔서 그들에게 붙잡히고 심문을 받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로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놓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런 주님을 심문하는 대제사장의 인간적인 악함은 '한 사람이 죽으므로 민족이 구원 받게 하자'라는 말에 숨겨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주님?
우리의 죄악된 모습들 가운데서도 베푸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게 하옵시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위해 생명까지 아끼시지 않으신 예수님의 순종을 본받게 하옵시고,
주님 홀로 존귀와 영광 받으실 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여호와 샬롬~
# 삶의 부끄러움이 없이 십자가를 향해 당당히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기도와 금식을 통해 낙태를 종식하기 위해 사역하는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 캠페인'(40 Days for Life)이 세계적으로 확장되어 낙태 산업이 종식되고, 어린 생명을 더 많이 구할 수 있게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구드립니다.
찬송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https://youtu.be/-EJSmSNuMW0
안나스에게로 끌려가신 예수님
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라
베드로의 첫 번째 부인(否認)
15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대제사장의 심문에 당당히 맞서시는 예수님
19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대하여 물으니
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르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베드로의 두 번째, 세 번째 부인(否認)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대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 예수님은 대제사장에게,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심문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시종일관 당당하게 임하시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 14절)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살리는 대속물로 내놓으셨습니다(막 10:45).
대제사장 가야바는 이전에 열린 산헤드린 공회에서 민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예수님을 죽이자고 주장했습니다(11:50). 그러나 하나님은 악의에 찬 그의 말을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시는 예수님'을 증언하는 말이 되게 하셨습니다(11:51,52). 예수님의 죽음은 허망한 비극이 아니였습니다. 수많은 생명을 잉태하는 창조적 죽음이었습니다.
19-24절) 대제사장은 마치 예수님이 비밀리에 불온한 사상을 전하기라도 한 것처럼 질문을 던졌지만, 예수님은 아무 것도 감추지 않고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가르치셨기 때문에 당당하셨습니다.
도리어 증인과 증언도 없이 자신을 죄인 취급하는 법정의 오류를 지적하셨습니다. 또 제사장의 아랫사람(경비병)이 예수님께 폭력을 휘둘렀지만 거기에 주눅 들지 않으시고 부당한 폭력에 항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투명했기에 권력보다 당당하셨고, 삶이 정의로웠기에 폭력보다 단단하셨습니다. 정말 사모하고 본받을 만한 분이 아닙니까?
15,18,25-27절) 십자가를 놓치면 예수님도 놓칩니다. 칼을 휘두르면서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막으려 했던 베드로는 기어이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그에게 예수님은 모르는 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난의 십자가를 피하면 길을 잃습니다. 예수님의 길이라고 믿고 가는 그곳에 십자가가 있습니까?
22절) 사유하지 않는 사람의 충성심은 의인을 박해하는 불의한 폭력을 낳을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경비병은 심문 과정을 보면서도 대제사장의 심문이 정당한지, 심문받는 예수님이 정말 죄인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기가 모시는 사람에게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그의 맹목적인 충성과 성실이 결국 죄 없는 예수님을 때리는 데까지 이어졌습니다. 사유 없는 충성, 성찰 없는 신념만큼 무섭고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 아무런 흠도 죄도 없으신 예수님, 시기와 질투로 끌려가신 예수님.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으로는 아무런 흠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그저 세상을 유혹하고 현혹하며,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했다는 죄로 인해 대제사장에게 끌려가 고난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을 드러내시려 세상에 오셨으나, 세상은 거슬러 죽어 마땅한 행악자로 전락시킵니다.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하신 말씀처럼, 세상 모든 죄악을 대속 한다는 대제사장 마저 죄인의 길을 향해, 예수님을 제거하려 합니다. 세상에 어떤 '선과 믿음'을 기대할 수 있곘습니까? 그럼에도 능력이 없으셔서 그들에게 붙잡히고 심문을 받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로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놓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런 주님을 심문하는 대제사장의 인간적인 악함은 '한 사람이 죽으므로 민족이 구원 받게 하자'라는 말에 숨겨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주님?
우리의 죄악된 모습들 가운데서도 베푸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게 하옵시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위해 생명까지 아끼시지 않으신 예수님의 순종을 본받게 하옵시고,
주님 홀로 존귀와 영광 받으실 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여호와 샬롬~
# 삶의 부끄러움이 없이 십자가를 향해 당당히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기도와 금식을 통해 낙태를 종식하기 위해 사역하는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 캠페인'(40 Days for Life)이 세계적으로 확장되어 낙태 산업이 종식되고, 어린 생명을 더 많이 구할 수 있게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구드립니다.
찬송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https://youtu.be/-EJSmSNuMW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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