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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난해]예수님의 죽음-72시간

91moses 2013. 5. 2. 20:37

예수가좋다오

[난해]예수님의 부활-

사흘 밤 낮 72시간?
랠프 E. 우드로우

 

 먼저 이글을 읽으면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주일을 지켜야 한다는 글이 아닙니다. 그동안 왜? 요나의 표적대로 3일-72시간이 않되는냐?는 논쟁이 있었고 [난해]의 목록에 등재 되었던 것을 알려주려는 시도입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이 성경대로 3일 낮과 3일 밤을 요나의 표적대로 이루셨다고 설명하는 것 입니다.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일맥-

 

 매년 4월만 되면 세계의 온 교회에서 부활절을 준비하느라 매우 분주하다. 부활절 행사에 활용되는 이교도적인 관습도 문제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날과 부활하신 날에 대한 잘못된 개념이 더 큰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춘분 후 만월이 지난 첫째 주 일요일을 부활주일로 지키며, 그 앞의 금요일을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고 해서 “성 금요일”로 지킨다. 오늘은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요나의 예언 대로 부활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준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요나의 표적-사흘 낮과 사흘 밤을?


(마태복음 12:38-40) - 38. 그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몇 사람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에게서 표적을 보기 원하나이다.”라고 하더라. 39. 그러나 주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줄 표적이 없도다. 40.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고래 뱃속에 있었듯이, 인자도 그처럼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땅의 심장 속에 있을 것이라.

 

 그러나 이것은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결정한 것일 뿐, 니케아 종교회의 이전까지는 통일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날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부활절”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 아니다. 카톧릭이 천년을 지배하는 동안 변질 시킨 것을 구약 성경에는 유월절과 초실절을 기준으로 한다. 결코 변질 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된 시간이다.


  우리 대부분은 예수께서 '성 금요일'에 죽으셨고 '부활절' 주일 이른 아침에 일어나셨다고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예수께서 '제3일'에 살아나실 것이라고 말하셨다는 것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금요일 일부를 제1일, 토요일 전체를 제2일, 일요일 일부를 제3일로 세었다. 하루 일부를 하루 전체로 계산하기 때문에, 때때로 '제3일'과 같은 표현은 하루하루의 일부분 만을 계산에 넣을 수도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예를 들어 『유대 백과사전』에 따르면, 비록 장례식이 오후에 치루어질지라도 장례식 치룬 날을 애통의 7일 중 제1일로 센다.(각주 - 『유대 백과사전』(The Jewish Encyclopedia), 제4권, p.475, '날' 항목.)

 

  예수께서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모레 (제3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눅 13:32-33)고 말씀하셨을 때, 설사 하루의 일부분만이 계산에 넣어질지라도 '모레'는 제3일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그리스도의 장사지냄과 부활 사이의 시간적 요소를 설명해 준다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 설명을 전혀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는 다른 기독교인들도 있다. 예수께서는 종종 '제3일'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6:21; 막 10:34). 그러나 그는 또한 이 기간을 밤 세 번 그리고 낮 세 번(밤낮 사흘)이라고 말씀하셨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마 12:38-40).

 

  '제삼일'이란 표준이 밤 세 번과 낮 세 번을 계산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성경적으로 창세기 1:4-13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이제 밤과 낮의 주기가 세 번이 되었다) 이는 셋째 날이니라." 이는 '제삼일'(셋째 날)이란 용어가 어떻게 밤 세 번과 낮 세 번을 다 계산에 넣어 그것을 대변해 보일 수 있는지의 실례를 제공해 준다.

 

  우리가 여기서 제시하려고 하는 견해(그것은 정확한 세 번의 밤과 낮을 인정한다)에 대해 우리는 오랫동안 호의를 보여왔지만 우리가 꼭 서둘러서 지적해야 할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으셨고 죽으셨으며 그리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그 사실이 그의 장사지냄과 관계된 시간적 요소와 관련하여 우리가 제안하려고 하는 어떤 설명보다 매우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낮이 열두 시간 그리고 밤이 열두 시간이기 때문에(요 11:9-10) 만약 우리가 정확한 '밤 세 번 그리고 낮 세 번'을 계산한다면 이는 72시간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적 요소가 정확하게 72시간이었는가? 예수께서는 '밤 세 번과 낮 세 번' 동안 무덤에 계시다가 '사흘 후에(만에)' 살아날 것이었다(막 8:31). 우리는 이것이 정확하게 72시간보다 더 적다고 상상할 만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만약 그가 '사흘 안에(동안에)' 죽음에서 살아났다면 이는 72시간 이상은 아니었을 것이다(요 2:19). 이 다양한 주장들을 조화시키기 위해 그 기간을 정확히 72시간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비합리적인 것 같지는 않다. 결국은 하나님은 정확한(exactness) 하나님이시다. 그는 계획에 따라 정확하게 모든 일을 행하신다. 어떤 것도 그에게는 우연적인 것이 하나도 없다.

 

  '때가 차매' -

 

 일년이라도 빠르거나 일년이라도 늦지 않고 정확하게 -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갈 4:4). 그의 기름부음의 때가 선지자 다니엘에 의해 미리 정해졌으며, 말되어진 것처럼 그와같이 그가 백성의 죄를 위해 '끊어 없어질' 때 또한 그러하였다(단 9:24-26). 그래서 이 정해진 때가 이르기 전에 그를 죽이려 했던 자들은 모두 실패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때'가 아직 차지 못했기 때문이다(요 7:8). 죽을 해와 때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시각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일부분이었다. 요한복음 17:1을 보면, 예수께서는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라고 기도하였다. 

 

  그가 태어나기로 한 정확한 때, 그가 기름부음 받기로 한 정확한 때 그가 사역을 시작할 정확한 때, 그가 죽기로 작정된 정확한 때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그의 장사지냄과 부활 사이에 정확한 기간-정확하게 72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믿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것이 옳다면, 부활은 그가 장사되었던 날과 똑같은 시각 - 삼일 후에 - 일어났다. 그렇다면 이 일이 그날 몇 시에 일어났을까?

 

  예수께서는 제 구 시 또는 오후 세 시가 지나서 곧 죽으셨다(마 27:46-50).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달라고 하니…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요 19:31-33). 이때쯤이면 '저물었을 때'(막 15:42)로 늦은 오후였다.

 

 율법은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라"(신 21:23)고 말하고 있다. 안식일 큰 날 전날에 해가 저물기 전, 남아있을 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허락을 얻어 그 시체를 가져갔다. 그와 니고데모는 그 시체를 장사하기 위해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싸서, 가까운 무덤 안에 두었다(요 19:38-42). 이 모든 일은 해질 무렵 쯤에 완결되었다.

 

  만약 부활이 예수가 장사되던 때와 똑같은 시간에, 단지 날만 다르게 3일 후에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면 이는 부활이 해질 무렵에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 된다. 해뜰 무렵이 아니다. 만약 해뜰 무렵에 부활하셨다면, 하룻밤이 더 필요하다. 낮 세 번 그리고 밤 네 번이 되어야 한다. 물론 이는 그와 같은 경우는 아니었다. 해돋을 때에 무덤에 온 사람들은 그들이 도착했던 때와 딱 들어맞게 그 부활이 있었음을 목격한 것이 아니었다. 그 대신에 비어있는 무덤을 발견하였다(막 16:2). 요한복음을 쓴 기자는 막달라 마리아가 그날 아침 아직 어두울 때 그 무덤에 왔으며 예수가 거기에 없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요 20:1-2).

 

  복음서 기자들은 한 주가 시작되는 첫 날 그 무덤에 들린 제자들의 다른 몇몇 방문들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모두가 다, 그들은 비어있는 무덤을 발견하였다. 천사는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마 28:6)고 전해주었다. 그가 살아나셨음을 제자들이 발견했던 때가 일주일의 첫날이었다.

(눅 24:1-2 등). 그러나 성경이 이때가 실제로 부활한 때였다고 말한 곳은 아무데도 없다.

 

  일요일 아침에 부활하셨다고 가르치는 것 같은 유일한 구절은 마가복음 16:9이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막 16:9). 그러나 이 구절은 예수께서 '부활하시던 중'이었다거나 그가 그때 '부활하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안식 후 첫날이 되었을 때 그는 '이미 부활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는 헬라어 동사 완료시제가 사용되었다. 우리 신약성경에서 번역된 헬라어 사본들에는 어떠한 구두점도 찍혀있지 않기 때문에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란 구절은 엄밀히 말하자면,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더욱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던 때와 연결될 수 있다(헬라어 성경에는 어순이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와 '살아나신 주'가 뒤바뀌어 있다-역자주). 따라서 '살아나셨다'는 단어 뒤에 쉼표를 찍음으로서 이 절은 다음과 같이 읽혀지게 된다.

 

 "예수께서 살아나신 후,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이것이 바로 마가가 의도했던 의미인 것 같다. 왜냐하면 뒤따르는 절들에서 마가는 부활한 날에 대해 설명하고자 함이 아니라 예수께서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셨음을 기록하고자 함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요일 아침이 되었을 때에는 이미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였다. 그러므로 부활은 그 전날 해질 무렵 쯤에 있었다. 이때로부터 삼일을 되짚어 계산해 봄 우리는 수요일에 이르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사흘 밤낮이 될 수 있는가? 그렇다 수요일 밤, 목요일 밤 그리고 금요일 밤이 세 번의 밤이며 또한 목요일 낮, 금요일 낮 그리고 토요일 낮이 세 번의 낮이다. 이렇게 되면 정확하게 그 합이 사흘 밤낮 또는 72시간이 된다. 수요일이 지난 후, 제1일이 목요일이 될 것이며 수요일 후 '제3일'이 토요일이 될 것이다.

 

두 안식일 (특별한 안식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 전 날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은 금요일에 죽으셨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안식일은 매주 돌아오는 일상적인 안식일이 아니라 일 년에 한 번 오는 특별한 안식일로, 성경은 [이는 그 안식일은 큰 날임이라.]고 특별히 밝혀 놓고 있다. 이 날은 유월절이라는 특별한 안식일이었다.(요 19:14,31). 이 특별한 안식일은 매번 같은 요일에 오지 않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던 그 해에 이 안식일(유월절)은 목요일이었다.

 

 마가복음 16:1과 누가복음 23:5,6을 비교하면서 자세히 상고해 보면 그 주간에 두 개의 안식일이 있었고, 이 두 안식일 사이에 일할 수 있는 평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갈 4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마가복음 16:1은 [안식일이 지난 후]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살로메가 좋은 향료를 샀다고 말하고 있지만, 누가복음 23:56에서는 그들이 [향료와 향유를 준비하고] 나서 안식일에 쉬었다고 말한다. 결국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수요일 저녁 6시에 무덤에 장사되셨고, 여자들은 목요일(유월절, 안식일)이 지난 후 향료를 준비하고(금요일), 그 다음날 안식일(토요일)에는 쉬었고, 그 다음날인 주의 첫날에 무덤으로 달려갔지만, 무덤은 이미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성경에는 주도면밀한 하나님께서 명령한 명절을 통한 그리스도의 시간 개념이 없었던들, 우리는 사탄이 로마 카톨릭을 통해서 만들어 놓은 터무니없는 낭설(“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일요일 새벽에 부활했다.”)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성경 어느 곳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 금요일에 죽으셨고, 일요일 새벽에 부활했다고 말하거나 암시하거나 뒷받침해 주는 곳은 없다. 우리는 성경대로 믿어야 한다. 그것은 구약에 예표 된‘초실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오늘도) 사흘 째요"(눅 24:21)라고 말한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들의 말은 도대체 무엇인가? 왜냐하면 이 상황은 안식일 후 첫날('그날'-개역성경)에 일어났으며(13절) 또한 그날이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 되었기 때문에 이는 예수께서 금요일에 죽으셨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는가? 만약 하루의 일부분을 하루 전체로 계산한다면 그러할 수 있다.

 

  한편 다른 방식으로 계산해보면 만약 이 일이 금요일에 되었다면 금요일 '이후' 하루째는 토요일이 될 것이며 금요일 '이후' 이틀째는 일요일이 될 것이며, 금요일 '이후' 사흘째는 월요일이 될 것이다. 물론 이 계산법은 틀릴 수도 있으며 또한 이 계산방식에 따르면 오히려 금요일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 아님을 암시할 수 있다. 이방인들이 자기의 날(日)로 계산하니 결론이 않나고 유대력으로 성경을 보고 유다인의 입장에서 성경을 해석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나는 적절한 설명을 제시하려고 찾던 중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들은 '이 모든 된 일(들)'은 하나 이상의 사건들을 이야기하였다(14절). 만약 '이 일들'에 체포, 십자가에 죽으심, 장사됨 그리고 무덤을 인봉하고 파수꾼을 배치한 일을 모두 포함시킨다면 이 모든 일들은 목요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행해졌을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예수께서는 '예비일'(수요일)에 십자가에 달려죽으셨다는 것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이튿날(목요일)은 예비일 다음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하나이다"(마 27:62-66).

 

이런 이유 때문에 무덤은 인봉되었고 파수꾼이 지키게 하였다. 무덤이 인봉되고 지켜지게 됨으로써 '이 일들'은 완전히 완결되었다. 이 일들이 모두 '끝났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이 일은 그 주의 목요일 즉 그 큰 날에 일어났다. 그러므로 일요일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이후 사흘째라기보다는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였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안식일 전날에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금요일이 죽으신 날로 믿어지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죽으셨던 다음날의 안식일은 매주마다 돌아오는 안식일이 아니었다. 그날은 매년에 한 번 있는 안식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안식일이 큰 날이었기 때문이다(요 19:14, 31). 이러한 안식일은 그 주의 어떤 요일에나 해당될 수 있으며 그 해에는 분명히 목요일이었다.

 

  예수께서는 예비일(수요일)에 십자가에 달려죽으시고 장사되었으며 그 다음날은 큰 날 안식일(목요일)이었고 그 다음날은 금요일 그리고 매주마다 있는 안식일(토요일)이 뒤따라왔다. 그 주에 두 번의 안식일이 있었다는 이해가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안식일 전날 십자가에 달려죽으셨고 안식일 다음날이 되었을 때 이미 무덤에서 살아나신 후 였으나 사흘 밤낮의 표적을 완성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마가복음 16:1과 누가복음 23:56을 주의 깊게 비교해 보면 그 주에 두 번의 안식일이 있었다는 더 확실한 증거를 - 이 두 안식일 사이에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일할 수 있는 날이 있었다는 것과 함께 - 찾을 수 있다. 마가복음 16:1은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라고 말한다.

 

  이 절은 이 여자들이 향품을 사두었던 때가 바로 안식일이 지난 후였음을 말한다. 그러나 누가복음 23:56은 그들이 향품을 준비했으며 향품을 준비한 후에 안식일에 쉬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한 절은 여자들이 향품을 사둔 때가 안식일이 지난 후였다고 말한 반면, 다른 절은 그들이 안식일 전에 향품을 준비했다고 말한다. 그들이 먼저 향품을 산 후에야 그것을 준비했다고 할 수 있으므로 그 주에 서로 다른 두 안식일이 있었다는 확증은 결정적인 것 같다.

 

  "영원"(Eternity)이란 잡지의 편집장인 도날드 그레이 반하우스(Donald Grey Barnhouse)는 다음과 같은 글을 잡지에 썼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주님의 마지막 주에 두 번의 안식일이 있었다고 주장해왔다. 바로 이 두 안식일은 토요일 안식일과 유월절 안식일이며 후자는 목요일이었다. 그들은 수요일 낮 십자가에 달려죽으신 그의 몸을 급히 끌어 내렸으며 그는 사흘 밤 낮(적어도 72시간) 동안 무덤 안에 계셨다."

 

그는 최후의 만찬을 화요일에 두고 있는 사해 두루마리(Dead Sea Scroll)로부터 그 증거를 제시하며, 불어로 출판된 로마 카톨릭 저널에서 "에피파니우스(Epiphanius)와 페타우(Pettau)의 빅토리누스(Victorinus: 304년에 사망) 뿐만 아니라 사도들의 교훈(The Didascalia Apostolorum)에 의해 증언된 고대 기독교 전통은 화요일 밤을 최후 만찬의 날로서 묘사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체포됨을 기념하기 위해 수요일에 금식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각주 - "영원"(Eternity), 1958년 6월호.)는 것을 인용하고 있다.

 

  비록 금요일에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다는 것이 강력하게 고수되고 있지만 『카톨릭 백과사전』은 모든 학자들이 이를 믿어온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에피파니우스, 락탄티우스(Lactantius), 웨스코트(Wescott), 카시오도루스(Cassiodorus) 그리고 투워스(Tours)의 그레고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날로서 금요일을 반대하는 사람들로 언급되고 있다.(『카톨릭 백과사전』, 제8권, p. 378. '예수 그리스도' 항목.)

  W. L. 페틴길(Pettingill)은 그의 책 『성경 난제 해설』(Bible Questions Answered)에서 이렇게 질문과 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 주 어떤 날에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가? 그 죽으심은 수요일이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명확하다."(각주 - 페틴길(Pettingill, 『성경난제해설』(Bible Questions Answered), p. 182.)

 

  Dake's Annotated Reference Bible은 마태복음 12:40의 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정확히 세 번의 낮 동안 그리고 정확히 세 번의 밤 동안 죽어 계셨다. 그는 수요일 해가 지기 바로 전에 무덤에 두어졌으며 토요일 해질 무렵에 부활하셨다…. 그가 금요일 해질 무렵에 장사되었다고 말하는 구절은 어디에도 없다. 만약 그렇다면 그가 오로지 한 번의 낮과 한 번의 밤만을 무덤 안에 있게 되는 것이며 이는 그 자신의 말씀이 거짓이었음을 입증한다."(각주 - 『데이크의 관주성경』(Dake's Annotated Reference Bible), p. 13.)

 

  여기에 주어진 다양한 성직자들로부터의 인용문들은 이 신념이 그들이 교제했던 다양한 교회조직들의 일반적인 수용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특별히 중요하다. 그런 경우에 처한 사람들은 단순히 편의에서가 아니라 확신에서 말한다. 복음주의자이며 성경연구소의 소장으로 알려져 있는 R. A. 토레이(Torrey)의 경우도 그러하다. 그의 말(1907년에 쓰여짐)은 우리가 여기에서 제시해온 기본적인 입장을 잘 요약하고 있다.

 

  "교회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온 전통에 따르면 예수는 금요일에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심되었고… 그리고 그 다음 일요일 매우 이른 아침에 죽음에서 살아나셨다. 많은 성경 독자들은 금요일 늦은 오후와 일요일 이른 아침 사이의 간격이 어떻게 밤낮 사흘로 계산될 수 있는지를 알고 나면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밤 두 번, 낮 한 번 그리고 다른 날 조금인 것 같다."

 

  "많은 주석가들에 의해 제안된 이 분명한 곤경에 대한 해결책은 '낮 한 번과 밤 한 번'이 '하루'를 말하는 단순한 다른 한 방식이며 고대 유대인들은 하루의 일부분을 하루 전체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이 해결책에 전혀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그것이 필자를 전혀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부담 없이 고백할 수 있다. 그것은 나에게는 임시 변통적인 것(makeshift)처럼 보인다."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예수께서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고 말하지도 암시하지도 않는다. 예수께서 '안식일 전날'에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말할 뿐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 경우에 어떤 안식일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 우리에게 추측해 볼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그날은 매 주마다 있는 안식일 전날(즉 금요일)이 아니라 유월절 안식일 전날이었다. 이 안식일은 그 해에는 목요일이었으므로 즉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날은 수요일이었다. 요한이 이를 대낮처럼 분명하게 보여준다."

 

  "예수께서는 수요일 바로 해질 무렵에 장사되었다. 72시간 후에… 그는 무덤에서 일어나셨다. 여자들이 아침에 해뜨기 바로 전 그 무덤을 방문했을 때에는 이미 비어있는 무덤을 발견하였다."

 

  "금요일에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지지해 주는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성경상의 모든 것들이 수요일(유월절)에 죽으셨다는 것과 완벽하게 조화된다. 우리가 먼저 예수께서 금요일이 아니라 수요일에 죽으셨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때 구약성경의 예언적인 그리고 대표적인 많은 구절들이 어떻게 완성 되었으며 복음서의 이야기들 사이에 불일치하는 것 같아 보이는 많은 것들이 어떻게 질서 정연하게 정리되어지는가는 자명해 진다."

 

(각주 - 토레이(Torrey), 『성경에 나타난 난제들 그리고 잘못 추정된 실수들과 모순들』(Difficulties and Alleged Errors and Contradictions in the Bible), pp. 104-109.)

(- 바벨론 신비종교 -) 로마 카톨릭의 어제와 오늘(Babylon Mystery Religion -Ancient and Modern-)>(기독교문서선교회) - 랠프 E. 우드로우(Ralph Edward Woodrow) 著 김덕균·이송훈 共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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