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간음(奸淫)하지 말라.
글/扈一麥
마 5장27-30절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오늘은 십계명 중에 일곱 번째 계명입니다. [너는 간음하지 말라.] 십계명의 말씀은 구약의 모든 계명의 기초이며, 모든 율법의 초석이고, 모든 사람이 죄인이란 사실을 가르쳐 주며,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 선생입니다. 법률적인 용어로 간통은 “배우자가 있는 남녀가 배우자 이외의 남녀와 성 관계를 갖는 행위”를 말하고, “간음”은 비혼인관계(非婚姻關係)에 있는 남녀의 성적 관계를 갖는 행위를 말하는데 이 둘 다 성경에서는 간음이라고 말합니다.
성(性)을 매개로 가해지는 신체적·언어적·심리적 폭력을 성폭력이라고 하고, 직장 등에서 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성과 관련된 언동으로 불쾌하고 굴욕적인 느낌을 갖게 하거나 고용상의 불이익 등 유무형의 피해를 주는 행위를 성희롱이라고 하며, 입맞춤·포옹· 뒤에서 껴안기 등의 신체적 접촉이나 엉덩이 등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는 행위를 성추행이라고 하는데 이 모든 행위를 주님은 일곱 번째 계명인 [너는 간음하지 말라] 이 한 마디에 다 담아 두셨습니다. 성경에서의 용어는 눈에 보이는 물리적이고 육체 적인 면 외에 항상 영적인 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너는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 역시 육체적 관계 외에 영적인 음행, 영적인 간음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간음의 성경적 의미는 불법적인 결합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금하시는 결합, 연합, 동조, 일치는 모두 간음입니다. 육체적으로 결합하면 성적 간음이 되고, 정신적으로 결합하면 정신적 간음이 되고, 영적으로 결합하면 영적 간음이 됩니다. 육체적 간음은 배우자 이외의 상대와 성적 결합, 동성간의 결합, 인간이 아닌 짐승이나 다른 육체(성경에서는 이상한 육체·strange flesh라고 말함)와의 결합이 해당됩니다. 정신적 간음이란 육체적으로는 결합하지 않았지만 음욕이 가득한 눈으로 이성을 바라보는 것, 마음 속에서 저지르는 온갖 부정한 일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주로 은밀히 죄를 짓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영적 간음이란 탐욕, 우상 숭배 등을 말합니다. 하나님 외의 다른 어떤 것을 섬기고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이 있다면 모두 영적 간음에 해당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그것은 영적 간음이 됩니다. 돈을 사랑하면 역시 영적 간음에 해당합니다. 간음의 성경적 의미를 분명히 마음 속에 각인(刻印)해 두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분리와 구별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이 분리하시고, 구별을 두신 것을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영으로든 결합하는 것이 바로 간음이란 것입니다. “너는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의 본질적인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이 간음이라는 단어와 행음이라는 단어거 나오면 자세히 보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간음이나 행음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자기를 매우 의롭게 여기는 한 바리새인이 이렇게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이렇게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착취하고 불의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더욱이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18:11). 그는 자신이 간음하는 자들 같지 않았다고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그는 간음의 의미를 육체적 간음에 한정해서 정의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부자 청년이 주님께 나아와 [어떤 치리자가 그분께 여쭈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으리이까? 하니](눅18:19)고 물었을 때 주님은 십계명 중 5-9계명을 말씀해 주셨는데, 순서대로가 아니라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은 [간음하지 말라]였습니다. [네가 명령들을 아나니 곧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눅18:20). 간음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흔히 짓는 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가 이르되, 이 모든 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지켰나이다, 하매](눅18:21). 이 청년 역시 육체적 간음만 간음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의미를 1/3만 이해하고 준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중에 진정으로 율법을 다 지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구약을 외적으로 형식적으로 다 지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내적으로 들어가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간음 역시 살인과 마찬가지로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행동 이전에 마음입니다. [이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행, 도둑질, 거짓증거, 신성 모독이기 때문이니](마15:19). 악한 생각이 마음 속에서 나오듯이 살인, 간음, 음행 역시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그것이 내재하고 있으며, 선천적으로 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누가 바리새인처럼, 부자 청년처럼 주님 앞에서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사람일뿐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내가 어려서부터 이런 죄를 범하고 살았나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의롭게 되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마음속에서 나오는 모든 악한 상상, 생각까지를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일곱 번째 계명을 이렇게 해석해 주셨습니다. [옛 사람들이 말한바, 너는 간음하지 말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욕(淫慾)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 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마5:27-28). 이는 육체적 결합의 간음이 아니라 정신적 마음 상태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윗처럼 권세가 있고, 힘이 있고, 돈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약자들은 다윗처럼 여자를 볼 수는 있지만 마음대로 취하지는 못합니다. 육체적으로는 분명히 차이가 있지만 “음욕을 품는 자”란 면에서는 동일한 간음자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계명을 통해 정죄와 심판을 받고,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 아래로 나아가게 하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복음, 은혜 아래 있지 않고는 도저히 죄의 사슬과 율법의 권능에서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세상의 신(神) 사탄이 사람들 한 가운데 행음의 영을 섞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이 타락의 절정을 달릴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자기 행위의 틀을 바로잡아 자기 하나님께로 돌아서고자 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행음(行淫)의 영이 그들의 한가운데 있어 그들이 주를 알지 못하였음이니라.](호5:4). 마귀는 행음의 영을 사람들 한 가운데 두었습니다. 신문을 펼치면 가장 빈도수가 높은 단어 가운데 하나는 성폭력, 성희롱, 성추행, 간통, 간음과 같은 단어입니다. 성에 관련된 범죄가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교회 내의 성범죄도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거룩한 영이신 성령이 그들의 한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음행의 영이 한 가운데 있다는 증거입니다.
일반적으로 간음은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다른 남자나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현대 사회에 간음은 자주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연예인 부부도 간음으로 인해 법정에 서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10계명에 간음을 죄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잘못된 관계를 갖는 것은 죄가 됩니다. 하지만 사실 현대 사회에서 성의 자유는 하나님의 계명과 달리 느슨합니다. 그리고 범죄가 아닌 것처럼 부추기기까지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순결을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율법은 간음을 행했을 때 죄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음욕을 품은 것만으로 죄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한층 율법보다 강화된 말씀입니다. 율법은 마음의 의도까지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다른 여자를 음탕하게 바라보고, 상상을 하여도 정죄를 하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자제력에 관하여 칭찬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마저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육체의 욕망을 통제해야 할 뿐만 아니라. 마음도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통제도 어렵고, 마음의 통제도 어렵습니다.
이것은 흘끗 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의도를 가지고 계속 쳐다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흘끗 보고 상상할 수 없습니다. 계속 상대방을 보면서 갖는 생각입니다. 벌거벗은 모습을 상상하고, 여자와 성관계를 상상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성추행이 강화되어서 남자가 게슴츠레하게 여자를 바라보는 것으로 성희롱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런 의도 없이 여자를 계속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이 세상의 법으로는 지나친 법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쩌면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착각한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한계가 모호하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잘 알려진 유머입니다. 어느날 저녁, 동네 미장원 여자주인이 막 문을 닫으려는 참이었습니다. 그때 한 사나이가 불쑥 들어오더니 다급한 얼굴로, “지금 커트 좀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여주인은 덮개 천을 목에 감아주고 커트를 시작했습니다. 사나이는 실눈으로 거울을 쳐다보고 있는데 자기 머리를 보는 건지 아주머니를 보는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나이의 한 손이 덮개 천 밑으로 들어가더니 사나이의 허리 아래쪽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나서 바로 반대쪽 손도 들어가더니 두 손이 천밑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두 손으로 덮개 밑에서 이상한 짓을 하는 모습 을 보고 아주머니는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서는데 그 사나이가 일이 끝났는지 손을 슬그머니 빼려는 것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순간 “이 변태××” 하면서 옆에 있는 스테인리스로 된 육중한 헤어드라이어로 사나이의 뒤통수를 있는 힘을 다해서 내리쳤습니다. 사나이는 의자에 앉은 채로 그만 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아주머니는 경찰에 전화를 했고, 출동한 경관이 기절한 피의자를 흔들었습니다. 머리는 반쯤 깎고 덮개 천을 한 채 피의자는 정신을 차렸고, 경찰이 물었다. “당신 여기서 무슨 짓을 한 거요?” 그러자, 사나이 왈, “무슨 일인데요? 이발하다가 안경 닦은 것까지는 생각나는데…. ” 사람은 별별 상상을 다 합니다. 자기가 보는 기준으로 모든 것을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주셨습니까? 우리는 너무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간음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마치 간음 죄를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실 때 간음 죄만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바리새인들은 간음 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마음으로 죄를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 마음에서 죄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처음 죄는 상상으로 마음의 계획으로 가지고 있다가 형상화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생각을 마음에서 씻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이 범죄를 한다고 하여 우리는 오른쪽 눈을 떼어내 버리지 않습니다. 손이 잘못을 한다고 해서 손을 자르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왜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됩니까? 형벌이 무섭고, 지옥의 불이 무서워서 입니까?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답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행복하게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리시킵니다. 그러므로 죄를 무서워하라는 것입니다.
[너는 간음하지 말라.] 이 말씀은 ‘거룩하라’, ‘순결하라’, ‘세상과 친구가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는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이며, 신약에서는 교회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주님의 뜻은 언제나 거룩함입니다. 주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주] 너희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이니라.](레19:2, 벧전1:16). 주님은 거룩한 것, 순결한 것, 깨끗한 것을 추구하시며, 모든 성도들에게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과 혼인 관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십니다. [이는 너를 만드신 이가 네 남편이기 때문이니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主시니라. 그분은 네 구속자(救贖者)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니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시리라.](사54:5). 그래서 이스라엘은 주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을 때 그것은 제 1-4계명의 죄만 범하는 것이 아니라 간음이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우상 숭배가 만연한 타락한 민족을 향해 주님의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오 이스라엘의 집아, 마치 아내가 자기 남편을 속이고 떠나는 것같이 너희가 나를 속였느니라. 主가 말하노라.](렘3:20).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혼인 서약을 깨뜨리고 떠나버린 간음한 여자로 비유하셨습니다.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에 따른 것이 아니니 내가 그들의 남편이었을지라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主가 말하노라.](렘31:32). [오히려 자기 남편대신 다른 사람들을 취하여 간음을 행하는 아내와 같도다.](겔16:32).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약4:4). 하나님의 원수되는 영적 간음의 죄입니다
[너는 간음하지 말라.] 간음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이 범하는 죄요,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는 죄입니다. 현 세대는 ‘소돔과 고모라’에 못잖은 음행의 물결이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비단 성범죄 때문에 멸망당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숭배가 극심하였기에 멸망당한 것입니다.
요즘은 특히 청소년 성범죄, 원조교제, 매춘, 동성연애 등이 연일 신문 사회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일 대책을 세운다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지만 범죄율은 증가일로(增加一路)에 있습니다. 이런 범죄에 대한 가장 바보같은 대책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에게 조기 성교육(性敎育)을 시키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피아노를 배우면 그 아이는 피아노를 칩니다. 아이가 화투나 카드를 배우면 도박을 합니다. 아이는 배운 대로 합니다. 그러면 아이가 성교육(性敎育)을 받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물어 볼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성교육은 결혼한 부부를 상대로 결혼 후에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성범죄를 방지하고 싶다면 조기 성교육이 아니라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성적 범죄를 방지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가운데 숨기는 것 뿐입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할 따름이니이다.](시119:9). 잠언 6:20-29절을 보십시오. 일곱 번째 계명을 지키는 법이 확실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방법보다 더 확실한 성범죄 방지 방법을 아직까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방법은 실패율이 전혀 없는 완전 무결한 방법입니다.
잠언 6장20-29절.[20.내 아들아, 네 아버지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머니의 법을 버리지 말고 21.그것들을 계속해서 네 마음에 묶어 두며 네 목에 매어 두라. 22.그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고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깰 때에 너와 말하리니 23.이는 그 명령이 등불이요, 그 법이 빛이요, 훈계하는 책망들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니라. 24.이것이 너를 지켜 악한 여자에게서 떠나게 하며 낯선 여자의 혀에서 나오는 아첨하는 말에서 떠나게 하리라. 25.그녀의 아름다움을 따라 네 마음 속에 정욕을 품지 말며 그녀의 눈꺼풀이 너를 붙잡지 못하게 하라. 26.이는 음탕한 여자로 말미암아 남자는 빵 한 조각만 남게 되고 간음하는 여자는 귀중한 생명을 사냥할 것임이로다. 27.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도 자기 옷을 태우지 아니할 수 있겠느냐? 28.사람이 뜨거운 숯불을 밟고서도 자기 발을 태우지 아니할 수 있겠느냐? 29.자기 이웃의 아내에게 들어가는 자도 그와 같으리라. 누구든지 그녀에게 손을 대는 자는 무죄하지 아니하리라.]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것들을 계속해서 네 마음에 묶어 두며, 네 목에 매어 두는 것”(잠6:20)만이 크리스천 가정의 진정한 자녀 성교육(性敎育) 방법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더러움으로부터 지키는 길입니다.
[너는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은 거룩히 구별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구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간음, 음행은 누구와 아니면 무엇과 불법적으로 합쳐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하나됨, 그리스도와 하나님됨, 진리 안에서 하나되는 것과 같이 주님이 합하신 것이 아니라 임의로 합하는 것이 바로 간음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가 거룩히 구별되는 것이라. 그런즉 너희는 음행을 멀리하고](살전4:3). 우리는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불타는 정욕을 흐르는 회개의 눈물로 완전히 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영을 통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김을 받음으로 거룩히 구별되었습니다. [전에는 너희 가운데 이 같은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이제는 너희가 우리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김을 받고 거룩히 구별되어 의롭게 되었느니라.](고전6:11).
[너는 간음하지 말라.] 하나님은 육체적 간음보다 영적 간음을 더욱 미워하십니다. 여기에 대한 가장 좋은 본보기는 사울과 다윗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울은 육체적으로 간음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다윗과 달리 많은 아내를 두지 않았습니다. 이에 비해 다윗은 참으로 많은 아내를 두었고, 우리아의 아내를 취함으로 간음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아를 청부 살해함으로써 십계명 가운데 [너는 살인하지 말라]는 여섯 번째 계명과 [너는 간음하지 말라]는 일곱 번째 계명을 동시에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 두 가지 죄는 [반드시 죽일지니라]는 명령이 주어진 그런 범죄입니다.
누가 생각해도 다윗이 사울보다는 훨씬 비윤리적이고, 큰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평가를 받습니다. 사울은 육체적인 간음을 하지 않는 대신 영적인 간음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마음이 주님을 떠났습니다. 사울은 주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통해 죄를 지적받고서 죄인 줄 알았지만 회개하는 대신 변명했습니다. 그는 후에 부리는 영을 지닌 여자를 찾아감으로서 배교의 절정을 달리고 말았습니다(삼하28:8). 그의 죄는 육신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육체로는 범죄 했지만 한 번도 마음이 주님을 떠난 적이 없었고, 그가 넘어졌을 때는 철저히 회개함으로써 주님의 확실한 긍휼을 받았습니다(사55:3, 행13:34).
다윗의 예는 우리가 다윗과 같이 살인자요, 간음자로서 육체적으로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을지라도 영적인 간음자요, 살인자가 아니라면 다윗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간음자, 살인자가 사면(赦免)을 받는 그런 법이 바로 복음에 들어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사 이제 다시 썩음으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게 하실 것에 관하여는 이같이 이르시되, 내가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긍휼을 너희에게 베풀리라, 하셨느니라.](행13:34).
[너는 간음하지 말라.] 이 말씀은 ‘거룩하라’, ‘순결하라’, ‘세상과 친구가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는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이며, 신약에서는 교회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주님의 뜻은 언제나 거룩함입니다. 주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주 너희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이니라.](레19:2, 벧전1:16). 주님은 거룩한 것, 순결한 것, 깨끗한 것을 추구하시며, 모든 성도들에게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과 혼인 관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십니다. [이는 너를 만드신 이가 네 남편이기 때문이니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주시니라. 그분은 네 구속자(救贖者)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니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시리라.](사54:5).
그래서 이스라엘은 주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을 때 그것은 제 1-4계명의 죄만 범하는 것이 아니라 간음이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우상 숭배가 만연한 타락한 민족을 향해 주님의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오 이스라엘의 집아, 마치 아내가 자기 남편을 속이고 떠나는 것같이 너희가 나를 속였느니라. 주가 말하노라.](렘3:20).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혼인 서약을 깨뜨리고 떠나버린 간음한 여자로 비유하셨습니다.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에 따른 것이 아니니 내가 그들의 남편이었을지라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주가 말하노라.](렘31:32). [오히려 자기 남편대신 다른 사람들을 취하여 간음을 행하는 아내와 같도다.](겔16:32).
만약 교회가 세상으로 돌아가 세상과 연합하면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것과 동일한 영적 간음입니다. 교회의 배교는 간음입니다. 주님은 교회가 세상의 친구가 되는 것을 가리켜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라고 부르셨습니다.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약4:4). 교회가 세상과 일치하거나 동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세상과 친구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원수되는 영적 간음의 죄입니다(약4:4).
교회는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거룩히 구별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시고 정결하게 하시며](엡5:26). 그렇다면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과 동시에 죄를 이길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구별을 명한 것을 어떤 것과 썩어 버리시는 일을 지극히 혐오하십니다. 특히 부정한 것과 결합하는 것, 썩이는 것은 너무나 싫어하십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행하는 모든 죄는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짓느니라.](고전6:18).
요셉이 음행을 피하듯이 그렇게 우리는 피해야 합니다. 그러나 남의 손길은 피할 수 있다고 하지만 자신이 주체가 될 때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 지체(肢體)들을 죽이라. 곧 음행과 부정함과 무절제한 애정과 악한 욕정과 탐욕이니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골3:5). 죽여야 할 원수를 그냥 둘 때 원수와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수천 년에 걸쳐 입증한 예이며, 우리가 매일 겪는 영적 경험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종교일치(宗敎一致)를 하면 안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안에서 은혜로 거져주신 구원을 전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세상 교육을 하지 말고 주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간음 죄를 저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 부부는 서로 사랑하며 서로에게 충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함부로 갈라서는 안 됩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죄의 시작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항상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조기교육, 성교육 보다 주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하면 세상이 교회를 따라 올 것입니다.악한 생각을 버리고 항상 신랑되신 주의 말씀을 생각하며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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