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5 : 20-27 죽음이 슬픔인 사람 20251030
애굽 군대를 막아서는 요시야
20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성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 왔으므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 하였더니
21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22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요시야의 죽음과 애가
23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을 입었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24 그의 부하들이 그를 병거에서 내리게 하고 그의 버금 병거에 태워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그가 죽으니 그의 조상들의 묘실에 장사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25 예레미야는 그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모든 노래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은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의 규례가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
26 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행한 모든 선한 일과
27 그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 애굽 군대가 앗수르를 도와 바벨론을 공격하려고 갈그미스로 향합니다. 요시야는 애굽의 원정을 막으려고 전투를 벌이다 전사하고 맙니다.
👁 21절) 원수를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느고는 요시야와 싸울 의사도 없고, 갈그미스 원정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일이니 방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요시야는 그 말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인정하지 않고 싸우다가 끝내 전사합니다.
하나님은 나귀를 통해서도 말씀하시고(민 22:28),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통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말을 듣더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분별력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20-23절) 주전 612년에 바벨론이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하면서 앗수르는 거의 몰락했습니다.
그 후 앗수르는 갈그미스를 중심으로 세력을 정비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바벨론의 공격을 받으며 고전하고 있었습니다. 주전 609년, 바벨론의 확장을 견제하려는 애굽의 느고는 앗수르를 돕기 위해 갈그미스로 향했습니다. 그때 앗수르에게 강한 반감을 가진 요시야가 애굽 군대를 막기 위해 나셨습니다. 느고가 자신을 막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요시야는 므깃도에서 애굽 군대와 격돌했습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됩니다. 요시야는 국제 정세를 볼 때 애굽의 원정을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상식적인 그 판단이 하나님의 판단과 달랐습니다. 아주 당연한 상황이라도, 아니 당연한 상황일수록 잠시 멈추고 하나님께 먼저 물어야 합니다.
24-25절) 요시야는 전쟁 중에 큰 부상을 입고 예루살렘에 돌아와 숨을 거둡니다.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했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애가를 지었습니다. 죽음으로 사람들에게 슬픔을 안겨 주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그가 살아 생전에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로를 안겨 주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죽음이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는 것만큼 비참한 인생도 없을 것입니다.
🤎 (역대하 35:20-27)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열심이었던, 요시야 왕은 앗수르를 돕기 위해 원정에 나섰던 애굽 왕 느고가 갈그미스를 향한 길을 막아섰습니다. 애굽 왕 느고가 '이는 유다와 무관한 일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것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아닌 이방 왕에게 임했다는 핑계로 여기고, 하나님께 묻지 않은 '교만'이 동했던 것입니다. 느고의 진행을 막으려는 므깃도에서 전투 중에 중상을 입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열심보다 분별이 더 중요합니다. 요시야는 선한 왕이었지만, 마지막 불순종으로 인해 아합과 같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셨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완전한 순종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시야의 실패는 인간 왕의 한계를 보여 줍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요시야는 열심은 있었지만, 분별이 없었습니다. 말씀 앞에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기 판단으로 불순종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는 자연을 통해서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계신 것을 깨닫고, 아주 당연한 상황일지라도, 아니 당연한 상황일수록 잠시 멈추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덛입게 하옵소서. 결국 선한 왕조차 한 순간의 오판에 의한 불순종 앞에서는 보호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내 생각이 확실하고 선명해 보일지라도 인간적인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지혜를 덛입혀 주시옵소서. 인간적인 한계로 판단할 때, '법궤를 실은 수레가 떨어질까 염려되서 붙잡았던 웃사의 선한 뜻'에도 불구하고 법궤를 만지지 말라셨던 명령을 거스렀기에 죽음을 맞이 했습니다. 이처럼 나라와 민족의 무너져감을 한탄하고 선포했던 계엄, 이 땅에 경각심을 깨우려 했던 계엄령으로, 도리어 내란이란 프레임에 갇혀 직위를 잃고, 옥고를 치르는 윤대통령이 요시야의 길에 서게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 이 땅에 무너진 하나님의 선하신 정의와 공의가 되살아나게 하옵소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던 악한 왕이었던 므낫세 왕이 앗수르에 의해 포로로 바벨론까지 끌려가 심한 핍박과 고난 속에 하나님을 찾고 말씀 앞에 겸손했을 때, 되돌아와 선한 왕으로 섬길 수 있었던 역사가 되살아나게 하옵소서. 세계 정상들이 이 땅에 모이게 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되살아나게 하옵시고, 하나님의 일하심이 만 천하에 드러나게 하옵시고
하나님 홀로 존귀와 영광 받으실 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여호와 샬롬 ~
# 죽음이 슬픔이 될 수 있도록, 주변인들에게 말씀대로 살며 기쁨을 안겨 주게 하소서.
** 독일의 무종교인 비율이 47%로 늘면서 처음으로 카톨릭과 개신교인의 수를 앞질렀다. 독일 교회가 제도권 교회로서 변화할 모습을 찾아내고 교회를 떠난 이들이 다시 찾아오게 하실 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중보기도 드립니다.
찬송 : 315장,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https://youtu.be/CtvJlsvUKeA?si=vR6h0Fqlos346OXm
https://youtu.be/mLWGwrgu-xM?si=_d_-lE21-sEbOYQ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