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황인용이 써가는 말씀

《아버지의 과녁》

91moses 2026. 6. 6. 21:05

《아버지의 과녁》

어릴 때 운동회를 하면 과녁 맞히기 놀이가 있었다.

과녁의 중앙은 100점.

조금 벗어나면 90점,
더 벗어나면 50점,
과녁 밖으로 나가면 0점이었다.

세상도 비슷하다.

좋은 대학에 가면 높은 점수,
좋은 직장에 가면 높은 점수,
돈을 많이 벌면 높은 점수,
남보다 앞서가면 높은 점수를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중앙을 향해 달린다.

조금만 벗어나도 불안해하고,
남보다 뒤처질까 두려워한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아버지의 과녁도 과연 그럴까?

그분의 과녁에도 중앙에만 100점이 있고,
조금 벗어나면 감점이 있을까?

성경을 읽으며,
그리고 인생을 살아오며,
나는 조금 다른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내가 얼마나 정확했는가보다,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같았다.

얼마나 빨리 갔는가보다,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보시는 것 같았다.

세상은 하나의 중앙을 요구하지만,
하나님은 사람마다 다른 길을 허락하셨다.

어떤 이는 사업을 하고,
어떤 이는 교사가 되고,
어떤 이는 음악을 하고,
어떤 이는 평범한 가정을 지킨다.

음색이 다르고,
걸음이 다르고,
속도가 다르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방향 안에 있다면,
그 길들은 서로 경쟁하는 길이 아니라
각자의 소명을 향한 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가끔 상상해 본다.

하나님 아버지의 과녁은 세상의 과녁과 다를 것이라고.

그분을 향한 방향 안에 있다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실수해도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며,
방황해도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다.

마치 거대한 사랑의 중력처럼,
흩어진 우리의 삶을
결국 은혜의 중심으로 끌어당기신다.

그래서 신앙은
누가 더 높이 올라갔는가의 경쟁이 아니라,
어디를 바라보며 살아가는가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끝에서 하나님께서 물으신다면,

"왜 중앙을 맞히지 못했느냐?"

가 아니라,

"나를 향해 걸어왔느냐?"

를 물으실 것만 같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완벽함보다 방향을,

속도보다 관계를,

성공보다 은혜를 붙들고 싶다.

세상의 과녁은 중앙에만 100점이 있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과녁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은혜의 과녁이다.

T00J ∞ | MWPTGR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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